BLOG ARTICLE 실패 | 4 ARTICLE FOUND

  1. 2010/05/08 마지막 한발 (1)
  2. 2009/08/02 유수연 어록 :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에서...
  3. 2009/04/12 좋아 가는거야! (1)
  4. 2007/09/16 내 나이 20살에는.. (4)

마지막 한발

Frank's Story 2010/05/08 09:21


세상 모든일들이 의욕만으로 되는 것도 없고 또 열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아직 젊고 혈기 왕성하기에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하나로 용감하게 한국을 떠나 왔지만 언제나 그렇듯 현실에 부딪히고 깨지며 조금씩 성숙해 나가길 바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창 열심히 일을 할 시기에 급작스럽게 군대에 가게 되었고, 2년 동안 군대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살았기에 전역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전역을 하고나니 제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는데, 감당하기 힘든 인연들을 만나뵐 기회가 주어지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너무 앞섰던 것 같다.

세상을 먼저 배웠어야 하는데 준비되지 않은채로 너무 의욕만 앞섰다.

많은 시간이 걸려도 깨닫지 못하는것을 한순간에 모두 깨달았다 생각하는 어리석음.

나의 장점 : 실패를 빨리 극복한다.
나의 단점 : 실패를 빨리 잊는다.

삶에는 Input이 필요할 때가 있고 또 Output을 내야할 때가 있다. 지금은 한창 채워야 할 때다.
하나에만 빠져서 그것밖에 못하는 단순한 머리와 가슴을 가졌기에 여기저기 무식하게 부딪히기만 한다.

원래 어린 마음에 더욱 바보같은 짓만 하는 못난 성격만 가졌다.
 
아직 이룬것 하나 없고 자신있는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너무 큰것들만 보다보니 허풍만 늘었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심지어는 바보가 된다는 군대에서조차 바보가 되지 못한 바보…

쥐뿔도 없는채로 스스로 똑똑한 줄 아는 멍청한 놈. 싫은 소리 들어도 쉽게 잊고 좋은게 좋은줄로만 안다.

순서가 거꾸로 됐다.

우선 채우고 왔어야 하는데 원래 가진것도 없는 상태에서 비우기만 한채로 무언가 큰 것을 바라다보니 멍청한 실수만 저지른다.

아직 너무 어리다.

꼼꼼하지 못한데다 덜렁대기까지 한다.

내 인생 가장 바닥이었을 때가 언제였던가.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던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때 조차 기억하지 못하기에 순진하게 바보같기만 했다.

잊지 않아야 함을 기억하라.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없이 하루하루 눈에 보이는 것만 좇아 여기까지 오다보니 남는게 하나도 없다.

지금이 바닥이다.

자존심 따위는 없어진지 아주 오래전이다.

차분히 멀리보고 생각하자.
 
내가 하고 싶은건 미국과 한국을 잇는 브릿지,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문화를 습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군대에서 그나마 없는 것들 탈탈 털어버렸다고 좋아 했을 때가 불과 몇달 전인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쓸데 없는 것들만 가슴속에 가득 들어찼다.

미국에서 지내는 시간동안 한국 이 가장 필요로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서 가지고 가자.

이젠 마지막 한발 정도 남은 것 같다.

image



 목표나 꿈을 정형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막연했던 목표를 목표가 아닌 선택으로 만들어 준다. 이 하루하루가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나'를 만든다.

 섣부르게 목표를 정하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먼저 '나'를 만드는 '인고의 시간'을 가져야한다. 그래서 오늘도 독하게 하루를 버티며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나를 다듬어 가고 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면 동선을 짧게 해야한다. 최소한의 사람을 만나고 우선순위를 고민하며 움직여야 한다. 일단 목표와 기간이 정해지면 일시적으로 주변사람들을 정리해야 한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최소한의 방해를 받기 위해서다. 그 모든것은 가능한 빨리 목표를 이루고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행운이란 어느 날 내 방으로 들어와 내 손을 잡고 나를 데려가주진 않는다. 많이 깨지고, 구르고, 수많은 포기와 미련에 상처받고, 그렇게 좌우충돌하다 어느 모퉁이에 주저앉아 있을때, 마지못해 나타나 내 손을 잡아준다.

 결국 도전이란 내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의 방법이라는 것을, 그것을 통해 스스로의 무덤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전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도전과 성취는 중독성이 있다. (혹자는 이것을 보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라 말하기도 한다.)
 내 마음과 의지와 뜻이 있는 곳에 결국은 길이 생기고 그 길의 끝에 내가 보고싶어하는 내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도전은 새로운 나를 열어준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겪어본 사람들은 그 자학에 가까운 노력의 과정과 결과를 즐긴다.
 그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환상이거나 변명이다.
 도전은 계산된 투자로, 당연히 위험이 높은 배팅일수록 수익도 크다.
 도전, 그 자체는 나에게 돈이나 명예를 주지 않는다.
 도전은 나에게 시련을 주고 나를 채울 시간과 경험을 준다.
 그렇게 채워진 나를 외부에 드러내어 생기는 부수적인 결과가 돈이고 명예일 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사연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정상에 오르는 것은 남다른 희생과 사연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많은 변명과 사연들은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외롭고 강해지는 것! 세상을 뚫고나가기위한 최고의 무기이다.

 영화에서처럼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며 여행하는 삶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모습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고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에 집중하고 그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모습부터 완성해야 한다. 지금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나 미련 많고 아쉬움이 많은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가? 일단 독하게 부딪쳐보면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은 부딪쳐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이다.
난 내 모습을 선택하는 데도 자유롭고, 지금의 내 모습을 떠나는데도 자유롭다.

 실패를 갚아주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다.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은 것 뿐이다. 실패를 만회사는 데 평생이 걸린다 해도 괜찮다.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않고 반전을 꿈꾸며 노력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실패를 만회한 뒤에 해야한다. 일단 실패를 만회하면 모든게 너그러워 진다. 함부로 실패에 관용을 베풀지 마라.

 현대사회에서 맨손으로 일구어낸 재벌 신화는 불가능하다. 이제, 상류층으로 진입하려면 두 가지 통로를 선택할 수 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사회의 상류층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이들에게 열광하는 것은 폐쇄되어 있는 상류층의 성공과는 달리 성공 스토리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출발해 화려하게 성공하기까지의 스토리가 감동적이고, 우리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이 신흥 귀족들도 상류층의 홍보용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청담동에는 어린 상류층 자제들이 외제차와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거리를 가득메우고 다니신다. 아무리 발악해도 뒤집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당당히 보여주신다.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싫어,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 싫어 어떤 일이든 좋은게 좋은거라며 허허실실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유부단함을 결국 일을 망친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무능한 인맥은 나중에 민폐가 된다. 내가 지금 1~2년 동안 친구들을 못 본다해도 진정한 친구라면 나를 잊지 않는다. 내가 강자일 때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모여서 쉴 수가 있다. 하지만 내가 약자일 때 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나 하고 부탁일나 하러 다니며 민폐를 끼칠 수 있다. 정말 자신의 친구들을 지키고 싶다면, 진짜 인맥을 가지고 싶다면 자신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성장하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고, 외로울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내 친구들과 인맥을 유지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 세상을 절대 약자를 중심으로 모이지 않는다.
 내가 먼저 서면 인맥은 저절로 생긴다. 자기 중심이 확실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은 애써 인맥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되면 인맥은 자연히 넓어지기 때문이다


image(0) image (0)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꿈에 대해 딱 꼬집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머리가 좋다. 그리고 머리가 좋은 사람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을 좋아한다. 따라서 머리가 뛰어난 사람일 수록 성공하기 어렵다. 머리가 좋은 나머지 과거의 정보들을 참조해 근사한 꿈일수록 실현하기 힘든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과거의 정보들이란 대체로 부정적인 정보들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정보들에 집착한다는 사실은 불길한 예감일수록 더 잘 들어맞는 현상을 볼때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좋은 예감보다 나쁜 예감이 적중했던 기억이 우리의 뇌리 속에 훨씬 더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강이나 생명을 위협당한 일,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일일수록 더 오래, 더 생생히 기억하는 일종의 자기방어 본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자기방어본능 때문에 우리의 뇌에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관한 기억데이터가 훨씬 더 많이 저장된다. 결과적으로 볼 때 실패는 나쁜 예감과, 성공은 좋은 예감과 결부된다. 그래서 똑같이 적중하더라도 좋은 예감은 금방 잊어버리는 반면, 나쁜 예감은 오래 남는 것이다. 우리는 예정된 날짜에 받은 월급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예정된 날짜에 받지 못한 월급이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어쩌지?',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할 수 있으면 좋겠어.' 99%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이런 부정적 예지능력을 갖고 살아간다. 예감은 그대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어떤 분야에서든 마지막 승자가 된 사람들은 운의 법칙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한숨이나 부정적인 생각 대신 '나는 된다.', '나는 운이 좋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예감을 달고 다닌다.

 실패가 실패를 낳고 성공이 성공을 낳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든 실패를 거듭할수록 머릿속에 실패에 대한 기억데이터가 많아지기 때문에 실패를 예감하기가 쉬워진다. 실패하는 모습은 너끈히 그려볼 수 잇지만, 성공해서 기뻐하는 이미지는 거꾸로 매달아도 굴러나오지 않는다. '이번에도 실패하는 게 아닐까'하는 부정적인 이미지트레이닝에 집중하기 때문에 보기좋게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된다. 반대로 성공한 경험이 많을수록 성공을 예감하기가 쉬워진다. 이 성공 예감은 그대로 결과로 이어져 또 다른 성공을 부르게 되고, 나중에는 뇌 자체가 도무지 실패를 상상할 줄 모르는 뜻밖의 기적을 만들어 버린다.

 성공한 이들은 확률 따위는 무시하고 덤비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가봐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다는 착각대신 상식에 집착한다.

 적응능력이 뛰어난 99%의 사람들은 눈앞의 역경이나 자기 자신의 능력부족과 맞닥뜨릴 때마다 '주변 여건이 나빠 어쩔 수 없어', '나야 원래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니까' 하는 식으로 자위하며 쉽게 주저 앉는다. 하지만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단 1%의 사람들은 아무리 참담한 상황에서도 목전의 역경이나 자신의 능력부족을 순순히 인정하고 물러앉지 못한다. 그들은 오히려 꿈이나 소망을 실현시키려는 열정을 더욱 불태우며 환경을 바꾸고 스스로를 바꾼다.

 99% 사람들은 조금만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운이 없다'거나 '재수가 없다'고 치부한다. 하지만 1%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무리 불우하고 괴로운 시절에도 '나는 운이 좋다.', '나는 된다'고 여기는 괴짜들이다. 거품경제가 붕괴돼도 '좋아, 가는거야', 경기가 바닥이어도 '좋아 가는거야!'하고 부르짖는다. 그들은 위기든 호황이든, 다시없는 기회로 여기고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아 붓는다.


image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나이 20살에는

김 연종 교수

“20살 무렵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로 시작하는 글이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촌에 작은 낚시집이나 하나 열어서 살아가는 꿈.
또는 땡중이나 수도승이 되어 산사의 목어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꿈.
백두대간 봉우리 하나쯤 잡아서 산장지기를 하며 늙어가는 꿈”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리
“나를 성가시게 하고 인연이 없는 여자들은 매몰찬 상처만 남기고 떠나갔지”라고 쓰여있던...

요즘 20살은 어떤 꿈을 꿀까?
잘생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고 싶거나,
마천루에 자기 오피스를 가진 멋진 프로페셔널을 꿈꿀까?
아님 엄청 많은 돈을 갖고 싶다거나,
언제 죽어도 좋을 사랑하는 이와의 드라마 같은 연애를 꿈꿀까?

나는 요즘 20살이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매일처럼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그들을 아는 편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난 어느 20살로부터도 정작 꿈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더구나 은둔 같은 이야기를 듣고 말도 안된다고 황당해
하거나 너 그렇게 살면 어쩔거냐라는 걱정 따위를 해 본 적도 없다.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대개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거나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전부였을 뿐이다.
그게 꿈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꿈은 가령 지금의 내 처지나 환경이나 능력 등에 견주어서
계산해 본 어떤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실현 불가능한, 정말 영화 같은 그런 꿈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일 수도 있고,
한 부분만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은 어떤 것일 수도 있으며,
여태껏 한번도 해보지 않은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가령 1년 만이라도 여행을 다니고 싶다거나,
과제 시험 다 떠나서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어보고 싶다거나,
남을 위해 살아 보겠다고 아프리카 등지에서 기아아동을 돕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어쩌면 평생 해 보지 못할 일,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해 볼 수도 있는
그런 도전 같은 꿈을 말하는 것이다.

 
20살에 왜 특별히 그래야 하는가 물을 수도 있다.
그건 20살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고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도 되며
이상을 위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짊어진 짐이 아직은 가볍고 정해진 길도 딱히 없으며 메인 고삐는 없을 것이고,
몰라도 무섭지 않고 실패해도 두렵지 않은 그런 용기는 있을 것이며,
없어도 가난하지 않고, 이별 후에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배짱과 무모함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난 20살엔 평생 못 해볼 그런 일 하나 쯤 겪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령 방황, 실패, 좌절, 고뇌, 이별, 후회 같은.
어느 것 하나도 나중에 겪는다면 죽을 만큼 아픈 것들이지만,
20살엔 오히려 이런 단어들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20살은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나이,
성공을 바라기보다 상처 많은 젊은 날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의 사고가 너무 현실적이거나, 생활이 판에 박은 듯 길들여져 있다면,
그리하여 조금만 궤도를 벗어나도 불안하고 실패할까 두렵다면
어쩜 그대는 이미 20살을 지나버렸는지 모른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현실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해진 삶,
그대 20살엔 천방지축 날개 짓이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설사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서툴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언젠가 “내 나이 20살엔 꿈이 있었지”로 시작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image(0) imag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