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 6 ARTICLE FOUND

  1. 2010/01/02 2010 경인년 새해를 맞이하여...
  2. 2009/07/15 Nobody complex
  3. 2009/05/20 Fragment Idea Toward Dream 2
  4. 2009/04/12 좋아 가는거야! (1)
  5. 2007/09/16 내 나이 20살에는.. (4)
  6. 2007/09/15 런칭 전 (Coming Soon Message) (4)


 드디어 2010 새해가 밝았습니다.
 처음 군대에 입대할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장난처럼 '2010년이 오냐?!!!!!!' 라고 하던 그 새해가 드디어 밝았네요. ^^

 무역흑자도 사상 최대, 수출 규모도 세계 10위,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각자 힘차게 내딛고, 저 또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올 한해는 무척 희망찰 것 같습니다. 잠들어 있던 제 자신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에요. 연말연시 하늘에서 들이붓듯 떨어지는 악마의 하얀 똥가루조차 로맨틱하게 느껴집니다.

 군대는 저에게 현명하게 기다리는 법과,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과, 뜨겁게 사랑하는 법과 미래를 위한 참을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솔직히 다시 하라면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2년이란 세월이 저에게 준 것은 무의미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

 정말 지독하게 사랑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와 무관하게 참 많이 배워갑니다. 언젠가 삶에서 사랑으로 인해 잠깐의 방황을 겪으리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군대에서 맞게되어 더 진하게 성숙했습니다. 지난 2년을 결코 후회하진 않습니다. 메말랐던 저에게 진정한 사랑이 얼마나 가치있고 중요한 것인지 알게해준 그 사람과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 분께도요...

 이젠 그 지독했던 용기와 희망을 다시 저의 꿈과 열망으로 옮기겠습니다. 처절해지고 철저해지겠습니다. 다시 한번 뜨겁게 달려보겠습니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지금 이 시간을 회고할 때, 어느 때라도 망각되는 기억이 없게끔 열심히 살겠습니다.

 모두들 새해 바라시는 일들 빠뜨림 없이 모두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




<Military Autobiograph>

3군 사령부 내 직할부대인 3화학중대에서 작전통제병으로 근무.

 군대도 하나의 조직인만큼 행정업무에 있어서 인사, 군수, 정훈, 정보, 보안, 수송, 작전 등 많은 파트로 나눠져 있는데, 제가 맡았던 파트는 정보, 보안, 작전, 정훈 교육 분야 였습니다. 회사로 따지면 일종의 경영전략실인 셈이죠. 다른 모든 지원파트를 아우르고, 각각의 파트에 대해서도 지시를 해야하는 부서인데다 저희 부대에 제 보직이 하나밖에 없어서 한동안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군대에서 하는 말로 펜대 굴리면 여럿 다치는 보직이었죠.

 원래 제가 맡은 파트는 간부 3명에 병사 4명이서 운용되는 부서인데 부대 여건상 1명의 간부와 저, 이렇게 두명이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수시로 야근에, 너무나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호흡이 잘 맞아 계획적이고 의욕적으로 일을 처리해 한번도 누락되거나 딜레이 된 적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3군 전체를 관할하는 사령부 화학과 지원병력으로 발탁이 되어 2009년 국감자료를 비롯 수많은 공문과 영문으로 된 보고자료 등을 작성했습니다. KR/FE, UFG 훈련 등 큰 훈련 때는 미 증원 군단 특임요원들과 합동 작전을 하여 미군으로 부터 Certificate를 수료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협조회의를 위해 방한한 미군 지휘부 전속 통역병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통역장교들 또한 있었지만, 작전과 회의 내용에 대해 전문적인 내용을 아는 통역인력이 없었고 과거 Vienna Model UN에 참가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부족하지만 제가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연을 통해 사령부 내 미군들과 영어회화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마다  회화 스터디를 하였고 한달에 한번은 미군 부대를 직접 방문해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였습니다.

 3군 화학과 뿐만 아니라 사령부 부관과, 작전과 등 다른 부서에서도 의미있는 지원업무를 다수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2009년 용인시내 참전용사 분들을 찾아 그 분들께 훈장을 수여해드린 임무는 매우 뜻깊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보직이 컴퓨터와 친한데다, 입대 전 사회경험으로 인해 부대내에서 PC, 네트워크, 전산장비에 대한 모든 상황조치를 도맡아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잘 모르는 부분도 있었으나 군인정신으로 밤새 공부해서 모두 고쳐놓곤 했습니다.

 업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위로는 처, 부별 장군님, 아래로는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예전엔 미처 몰랐던 예의와 인내를 배웠습니다. 특히 항상 힘들어하는 행정병들의 분대장으로써, 본부소대장 없이 병사끼리 뭉쳐 고비마다 잘 해결해 나가려 힘을 모았습니다. 계급사회의 인습을 없애기 위해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중대본부 소대원들이 모두 모여 한주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아쉬웠던 부분, 오해가 있었던 부분, 화가났던 부분에 대해 계급장 떼 놓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저의 첫 소대장님이 제게 주신 '군대에서 남는 가장 큰 것은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항상 가슴에 담고 생활하였습니다.

 군생활 간 야간 경계작전과 야근 등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 PCT 자격증에 도전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두 번의 토익시험을 보았으며, 틈틈이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의 교류를 잊지 않았습니다. 매주 2~3통의 손편지로 지인들과의 인연도 소중히 하였으며, 특별히 제가 가장 사랑했던 한 친구를 위해 열정을 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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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ody complex

Frank's Story 2009/07/15 19:40



그렇게 믿고 싶었다.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면서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것,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스스로가 끝까지 용납할 수 없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꾹꾹 눌러 넣어두고, 그저 생긴 대로 사는게 행복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그들도 나름대로 불행하다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그 말을 너무나 믿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만들어 화려하게 빛내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게되면 그런 구차한 믿음은 나에게 위로가 되지않았다.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숨을 쉬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더라.

나는 평범하고 초라한 여대생. 이 사회의 수많은 들러리 중 하나였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에 억울해했고, TV 에 나오는 화려한 연예인들의 모습에 분노했다. 물론 지금도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외칠 수는 없다.

난 항상 내 존재에 목말라했고, 지금도 그렇다. 난 아직도 그리고 항상 내 존재에 목이 마르다.

아마 내가 꿈꾸는 것만큼 화려하게 나를 불살라 태우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이렇게 노력해도 끝까지 세상의 중심이 되지 못할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렇다고 물러설 순 없다.

그냥 주저앉아 초라함을 인정한 채 세상의 들러리로 평생을 산다는 것! 그것이 더 큰 짐이라는 것을 이미 20대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작은 행복을 느끼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증명되지 못한 Nobody Complex 를 평생 안고 살아갈 것인가

좌충우돌 이리저리 치이면서, 불안하고 외롭고 끝이 안 날 것 같은 인생, 그래도 내가 특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길을 갈 것인가. 내 존재를 증명하면서, 나는 살아 있다고, 나는 여기 있다고 끊임없이 외치며 가는 길.



'난 지나가는 행인 1,2 로는 존재할 수 없다'

바로 그 이유때문에 나는 오늘도 그 길을 가고 있다.

특별한 목표는 없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TV 속에 나오는 꿈은 꾸지 않는다. 변호사, 사업가, 정치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은 처음부터 없었다. 가끔 인터뷰에서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때면 정말 난감하다.

꼭 당신들이 아는 꿈을 꾸어야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난 나를 좀 더 화려하게 태워갈 수 있는 의미를 찾는 것이 꿈이다.

나는 왜 사는가? 왜 존재하는가? 이런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꿈.

그냥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나'와 함께 가장 나답게 성공하고싶다.

남들이 만족하는 모습, 모두를 안심시키고 같이 행복을 느끼며 사는 지루한 삶은 싫다.

나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정에 맞는 모난 돌 처럼 살아있다.



세상은 나를 인정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 세상의 비위를 맞추며 살지 않는다.

이 사회의 초라함에서 시작한 내 20대와 30대는 거칠고 독하다. 하지만 더 이상 초라하진 않다.


 

- 유수연 / 20대,나만의 무대를 세워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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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드러커는 전생애에 걸쳐 30여권의 위대한 걸작을 남겼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교수님의 책 중 최고의 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항상 "바로 다음에 나올 책"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베르디가 여든이라는 나이에도 늘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완벽을 추구하면서 오페라를 작곡하는 심정으로 책을 쓴다.

 - 피터 드러커

나는 굴이 무너져 갱 속에 갇혀버린 광부가 목숨을 걸고 곡괭이를 휘두르듯 글을 썼다.

- 발자크



몸이 아파서 하루에 몇 백번이나 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진짜 노동자처럼 이와 같이 괴로운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렇다.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비오는 날이거나 바람 부는 날이거나, 눈이 내리거나 번개가 치는 속에서도 망치를 내리치는 대장장이처럼 글을 썼다.

-플로베르



거리의 청소부가 되는 것이 운명이라면,
라파엘이 그림을 그리듯이,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조각하듯이,
베토벤이 작곡을 하듯이,
세익스피어가 시를 짓듯이 거리를 쓸어라.

- 마틴 루터 킹


 절제란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남이 시킨다고 할 수 잇는 것이 아니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자신을 다스리는 작은 절제가 결국 인생의 성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잇따. 술, 담배, TV, 인터넷, 과식. 세상에는 우리를 극단적으로 몰고갈 수 있는 향락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이들에게 져서는 안된다. 이들을 내 의지로 절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성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일이 안 풀릴때는 반성하지 말자. 오히려 일이 아주 잘 풀릴 때 반성하자.

 믿기 힘들지 모르지만, 세상 어떤 분야에서는 성공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반성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특히 그들은 상황이 안 좋을 때, 일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을 때 '절대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성하지 않는다. 밤낮없이 반성만하고 있는 이들은 백이면 백, 능력없는 사람들이다. 무슨 일만 잇으면 기다렸다는 듯 회의를 열어 반성을 유도하는 관리자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관리자요, 그런 사람이 관리자로 있는 조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조직이다.
 
 사람들은 흔히 상황이 나쁠 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기 쉽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하는 불안과 조바심이 실수에 실수를 더하게 하고 결국은 상황을 더욱 나쁜 쪽으로 몰고 간다. 늘 잘못만 이야기하고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이들은 으레 능력 없는 사람들이다.

 일이 안 풀릴 때는 심각하게 고민하면 할 수록 더 꼬인다.

 나쁜 상황을 타개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논리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에서 나오고 변화의 와중에 나온다.

 생각이 필요한 때는 오히려 일이 잘 풀릴 때이다. 일이 뜻대로 척척 잘 풀릴 때는 마음이 들뜨고 '우쭐거리는 상태'에 빠져 반성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 때문에 실패나 실수가 많아져 종국에는 재앙을 부르는 결과를 낳는다. 이른다 호사다마 인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뇌가 들뜨고 설레는 상태일 때야말로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점을 점검하고 머리를 식혀야 한다. 뇌가 성공에 대한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반성이라는 진정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이 없이 살아가는 이유는 자기 혼자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꿈을 가질 수 없다.


연인을 생각하면 두 사람의 꿈이 생긴다.

배우자를 생각하면 부부의 꿈이 생긴다.

부모를 생각하면 부모를 행복하게 할 꿈이 생긴다.

가족을 생각하면 가족을 위한 꿈이 생긴다.

고객을 생각하면 고객을 기쁘게 할 꿈이 생긴다.

팀을 생각하면 팀의 목표달성이라는 꿈이 생긴다.

세상을 생각하면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려는 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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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꿈에 대해 딱 꼬집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머리가 좋다. 그리고 머리가 좋은 사람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을 좋아한다. 따라서 머리가 뛰어난 사람일 수록 성공하기 어렵다. 머리가 좋은 나머지 과거의 정보들을 참조해 근사한 꿈일수록 실현하기 힘든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과거의 정보들이란 대체로 부정적인 정보들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정보들에 집착한다는 사실은 불길한 예감일수록 더 잘 들어맞는 현상을 볼때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좋은 예감보다 나쁜 예감이 적중했던 기억이 우리의 뇌리 속에 훨씬 더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강이나 생명을 위협당한 일,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일일수록 더 오래, 더 생생히 기억하는 일종의 자기방어 본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자기방어본능 때문에 우리의 뇌에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관한 기억데이터가 훨씬 더 많이 저장된다. 결과적으로 볼 때 실패는 나쁜 예감과, 성공은 좋은 예감과 결부된다. 그래서 똑같이 적중하더라도 좋은 예감은 금방 잊어버리는 반면, 나쁜 예감은 오래 남는 것이다. 우리는 예정된 날짜에 받은 월급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예정된 날짜에 받지 못한 월급이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어쩌지?',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할 수 있으면 좋겠어.' 99%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이런 부정적 예지능력을 갖고 살아간다. 예감은 그대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어떤 분야에서든 마지막 승자가 된 사람들은 운의 법칙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한숨이나 부정적인 생각 대신 '나는 된다.', '나는 운이 좋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예감을 달고 다닌다.

 실패가 실패를 낳고 성공이 성공을 낳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든 실패를 거듭할수록 머릿속에 실패에 대한 기억데이터가 많아지기 때문에 실패를 예감하기가 쉬워진다. 실패하는 모습은 너끈히 그려볼 수 잇지만, 성공해서 기뻐하는 이미지는 거꾸로 매달아도 굴러나오지 않는다. '이번에도 실패하는 게 아닐까'하는 부정적인 이미지트레이닝에 집중하기 때문에 보기좋게 실패의 쓴잔을 마시게 된다. 반대로 성공한 경험이 많을수록 성공을 예감하기가 쉬워진다. 이 성공 예감은 그대로 결과로 이어져 또 다른 성공을 부르게 되고, 나중에는 뇌 자체가 도무지 실패를 상상할 줄 모르는 뜻밖의 기적을 만들어 버린다.

 성공한 이들은 확률 따위는 무시하고 덤비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가봐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다는 착각대신 상식에 집착한다.

 적응능력이 뛰어난 99%의 사람들은 눈앞의 역경이나 자기 자신의 능력부족과 맞닥뜨릴 때마다 '주변 여건이 나빠 어쩔 수 없어', '나야 원래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니까' 하는 식으로 자위하며 쉽게 주저 앉는다. 하지만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단 1%의 사람들은 아무리 참담한 상황에서도 목전의 역경이나 자신의 능력부족을 순순히 인정하고 물러앉지 못한다. 그들은 오히려 꿈이나 소망을 실현시키려는 열정을 더욱 불태우며 환경을 바꾸고 스스로를 바꾼다.

 99% 사람들은 조금만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운이 없다'거나 '재수가 없다'고 치부한다. 하지만 1%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무리 불우하고 괴로운 시절에도 '나는 운이 좋다.', '나는 된다'고 여기는 괴짜들이다. 거품경제가 붕괴돼도 '좋아, 가는거야', 경기가 바닥이어도 '좋아 가는거야!'하고 부르짖는다. 그들은 위기든 호황이든, 다시없는 기회로 여기고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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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0살에는

김 연종 교수

“20살 무렵엔 누구나 은둔을 꿈꾸지”로 시작하는 글이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촌에 작은 낚시집이나 하나 열어서 살아가는 꿈.
또는 땡중이나 수도승이 되어 산사의 목어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꿈.
백두대간 봉우리 하나쯤 잡아서 산장지기를 하며 늙어가는 꿈”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리
“나를 성가시게 하고 인연이 없는 여자들은 매몰찬 상처만 남기고 떠나갔지”라고 쓰여있던...

요즘 20살은 어떤 꿈을 꿀까?
잘생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고 싶거나,
마천루에 자기 오피스를 가진 멋진 프로페셔널을 꿈꿀까?
아님 엄청 많은 돈을 갖고 싶다거나,
언제 죽어도 좋을 사랑하는 이와의 드라마 같은 연애를 꿈꿀까?

나는 요즘 20살이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매일처럼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그들을 아는 편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난 어느 20살로부터도 정작 꿈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더구나 은둔 같은 이야기를 듣고 말도 안된다고 황당해
하거나 너 그렇게 살면 어쩔거냐라는 걱정 따위를 해 본 적도 없다.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대개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거나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전부였을 뿐이다.
그게 꿈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꿈은 가령 지금의 내 처지나 환경이나 능력 등에 견주어서
계산해 본 어떤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실현 불가능한, 정말 영화 같은 그런 꿈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일 수도 있고,
한 부분만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은 어떤 것일 수도 있으며,
여태껏 한번도 해보지 않은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가령 1년 만이라도 여행을 다니고 싶다거나,
과제 시험 다 떠나서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어보고 싶다거나,
남을 위해 살아 보겠다고 아프리카 등지에서 기아아동을 돕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어쩌면 평생 해 보지 못할 일,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해 볼 수도 있는
그런 도전 같은 꿈을 말하는 것이다.

 
20살에 왜 특별히 그래야 하는가 물을 수도 있다.
그건 20살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고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도 되며
이상을 위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짊어진 짐이 아직은 가볍고 정해진 길도 딱히 없으며 메인 고삐는 없을 것이고,
몰라도 무섭지 않고 실패해도 두렵지 않은 그런 용기는 있을 것이며,
없어도 가난하지 않고, 이별 후에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배짱과 무모함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난 20살엔 평생 못 해볼 그런 일 하나 쯤 겪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령 방황, 실패, 좌절, 고뇌, 이별, 후회 같은.
어느 것 하나도 나중에 겪는다면 죽을 만큼 아픈 것들이지만,
20살엔 오히려 이런 단어들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20살은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나이,
성공을 바라기보다 상처 많은 젊은 날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의 사고가 너무 현실적이거나, 생활이 판에 박은 듯 길들여져 있다면,
그리하여 조금만 궤도를 벗어나도 불안하고 실패할까 두렵다면
어쩜 그대는 이미 20살을 지나버렸는지 모른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현실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해진 삶,
그대 20살엔 천방지축 날개 짓이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설사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서툴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언젠가 “내 나이 20살엔 꿈이 있었지”로 시작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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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시험' 이란 이름의 갈림길이 참 많은 것 같다.

어렸을 적 출전했던 피아노 콩쿨, 그 당시 트로피가 뭔지도 모르고 마냥 기분 좋았던 시절,
딴따라라는 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간 중학교 밴드부,
학창시절,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과학고와 외국어고 앞에서 눈물을 곱씹으며 돌아서야 했을 때,
나에게 수많은 질병과 고통을 안겨 주었던 대학 입시,
대학교 1학년 때, 너무나 입단하고 싶었던 동아리 오디션,
한번만 만나주면 안되겠냐고 끈질기게 구애했던 여학생의 선택의 순간,
꼬박 3개월을 골방에 처박혀 만들어 냈던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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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끝없는 '평가'의 연속이고 나는 그 거대한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판단되고 가름되며 기뻐하며 좌절한다.

작년 9월 피플투 첫 사업 설명회,
당시엔 사무실이 없어 강남구청 Tri-D Communication 회의실을 빌려 주위 친구들을 초청했을 때, 20명 남짓 되는 학생들의 반응이 어떨지 다음날까지 가슴 떨림이 멈추지 않았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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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9.17 People2 1st WorkShop]


 뜬 눈을 지새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2006.12.10일 오픈베타 런칭!

여러분~

12월 10일, 드디어 People2 사이트가 오픈 베타로 런칭되었습니다!


www.people2.co.kr(클릭!)


새롭고도 멋진 People2 세상을 체험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가입 하셔서 지급된 스탬프로 카드도 보내서 멘토도 맺어보시고,
멘토끼리 인증키워드도 선물 해 보세요^^

네임카드도, 전송 카드도 너무너무 예쁘답니다~

가입해 보시면 정말 재미있으실거에요!
여러분이 재미 느끼시는 만큼, 주위 친구들에게도 많이 많이 추천 해 주시구요.
(100명~+_+아시죠?ㅋㅋㅋㅋ)


당시엔 돈이 없어 제대로 된 배너하나, 광고하나 하지 못하고 열정 하나만으로 들이 댔던 그때 그 시절 그렇게 시작하던 날...


3월 19일 소프트뱅크 최종 PT 간밤에 숨막히던 긴장감과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침이 바싹바싹 마르던 그날의 아침,
6시, 아셈타워를 걸어 나오면서 대표님과 허심탄회하게 마셨던 산사춘 한병에 부족한 잠을 한번에 몰아서 기절해 버렸던 깊은밤.

최종 투자 심의 후, 결과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사무실 앞 간이 횟집,
대표님의 짖궂은 장난에 눈물섞어 마셨던 술잔들,
그리고 결국 투자 확정 소식에 바에서 처음으로 내 돈내고 사 먹었던 '빌라엠 로쏘'

그리고 현재,

지난 1년간 땀과 눈물로 잉태한 People2가 이제 세상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있다.

부디 무사히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할 나의 꿈과 열정. 나의 일.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어떤 것일까?

기자간담회 때는 몇분이 오실까?
블로거 간담회 때는 누가 오실까?
피플투 프렌즈 멤버들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준비한 프로모션이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어텐션을 받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피플투를 어떻게 이용할까?
업계에선 피플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피플투는 언제쯤 폭발할까?
...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서비스가 나오면 일단 내가 이용할 것이고, 우리 회가 스텝들이 이용할 것이고, 피플투 프렌즈가 이용할 것이고, 그 친구들이 이용할 것이고, 그렇게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쓸 것이고....
벌써 10,000 명은 확정이다! ^^

런칭 전, 여러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무정형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그것은 바로 '열정'이다.

안되면 될때까지 들이 박는거야. 인생 뭐 있나?

또 한번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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