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10 새해가 밝았습니다.
 처음 군대에 입대할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장난처럼 '2010년이 오냐?!!!!!!' 라고 하던 그 새해가 드디어 밝았네요. ^^

 무역흑자도 사상 최대, 수출 규모도 세계 10위,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각자 힘차게 내딛고, 저 또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올 한해는 무척 희망찰 것 같습니다. 잠들어 있던 제 자신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에요. 연말연시 하늘에서 들이붓듯 떨어지는 악마의 하얀 똥가루조차 로맨틱하게 느껴집니다.

 군대는 저에게 현명하게 기다리는 법과,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과, 뜨겁게 사랑하는 법과 미래를 위한 참을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솔직히 다시 하라면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2년이란 세월이 저에게 준 것은 무의미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

 정말 지독하게 사랑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와 무관하게 참 많이 배워갑니다. 언젠가 삶에서 사랑으로 인해 잠깐의 방황을 겪으리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군대에서 맞게되어 더 진하게 성숙했습니다. 지난 2년을 결코 후회하진 않습니다. 메말랐던 저에게 진정한 사랑이 얼마나 가치있고 중요한 것인지 알게해준 그 사람과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 분께도요...

 이젠 그 지독했던 용기와 희망을 다시 저의 꿈과 열망으로 옮기겠습니다. 처절해지고 철저해지겠습니다. 다시 한번 뜨겁게 달려보겠습니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지금 이 시간을 회고할 때, 어느 때라도 망각되는 기억이 없게끔 열심히 살겠습니다.

 모두들 새해 바라시는 일들 빠뜨림 없이 모두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




<Military Autobiograph>

3군 사령부 내 직할부대인 3화학중대에서 작전통제병으로 근무.

 군대도 하나의 조직인만큼 행정업무에 있어서 인사, 군수, 정훈, 정보, 보안, 수송, 작전 등 많은 파트로 나눠져 있는데, 제가 맡았던 파트는 정보, 보안, 작전, 정훈 교육 분야 였습니다. 회사로 따지면 일종의 경영전략실인 셈이죠. 다른 모든 지원파트를 아우르고, 각각의 파트에 대해서도 지시를 해야하는 부서인데다 저희 부대에 제 보직이 하나밖에 없어서 한동안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군대에서 하는 말로 펜대 굴리면 여럿 다치는 보직이었죠.

 원래 제가 맡은 파트는 간부 3명에 병사 4명이서 운용되는 부서인데 부대 여건상 1명의 간부와 저, 이렇게 두명이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수시로 야근에, 너무나 정신없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호흡이 잘 맞아 계획적이고 의욕적으로 일을 처리해 한번도 누락되거나 딜레이 된 적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3군 전체를 관할하는 사령부 화학과 지원병력으로 발탁이 되어 2009년 국감자료를 비롯 수많은 공문과 영문으로 된 보고자료 등을 작성했습니다. KR/FE, UFG 훈련 등 큰 훈련 때는 미 증원 군단 특임요원들과 합동 작전을 하여 미군으로 부터 Certificate를 수료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협조회의를 위해 방한한 미군 지휘부 전속 통역병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통역장교들 또한 있었지만, 작전과 회의 내용에 대해 전문적인 내용을 아는 통역인력이 없었고 과거 Vienna Model UN에 참가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부족하지만 제가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연을 통해 사령부 내 미군들과 영어회화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마다  회화 스터디를 하였고 한달에 한번은 미군 부대를 직접 방문해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였습니다.

 3군 화학과 뿐만 아니라 사령부 부관과, 작전과 등 다른 부서에서도 의미있는 지원업무를 다수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2009년 용인시내 참전용사 분들을 찾아 그 분들께 훈장을 수여해드린 임무는 매우 뜻깊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보직이 컴퓨터와 친한데다, 입대 전 사회경험으로 인해 부대내에서 PC, 네트워크, 전산장비에 대한 모든 상황조치를 도맡아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잘 모르는 부분도 있었으나 군인정신으로 밤새 공부해서 모두 고쳐놓곤 했습니다.

 업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위로는 처, 부별 장군님, 아래로는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예전엔 미처 몰랐던 예의와 인내를 배웠습니다. 특히 항상 힘들어하는 행정병들의 분대장으로써, 본부소대장 없이 병사끼리 뭉쳐 고비마다 잘 해결해 나가려 힘을 모았습니다. 계급사회의 인습을 없애기 위해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중대본부 소대원들이 모두 모여 한주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아쉬웠던 부분, 오해가 있었던 부분, 화가났던 부분에 대해 계급장 떼 놓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저의 첫 소대장님이 제게 주신 '군대에서 남는 가장 큰 것은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항상 가슴에 담고 생활하였습니다.

 군생활 간 야간 경계작전과 야근 등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 PCT 자격증에 도전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두 번의 토익시험을 보았으며, 틈틈이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의 교류를 잊지 않았습니다. 매주 2~3통의 손편지로 지인들과의 인연도 소중히 하였으며, 특별히 제가 가장 사랑했던 한 친구를 위해 열정을 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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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우리 집은 항상 통화중이었다. 그것 때문에 열 받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참다못해 집으로 달려온 아버지의 호통이 몰아쳐야 간신히 '통화 중'이 해제됐다. 내가 PC 통신에 빠진 탓이었따. '띠띠띠띠띠띠, 뚜루루, 삐이이익, 삑, 삐이이익' 이 같은 전자음만 들어도 가슴 떨리던 시절이었다. 데이콤에서 운영하던 천리안으로 시작된 나의 첫 PC 통신 입문이 디지털 소통 인생의 시작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나우누리를 시작했다. 그 속에서는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동아리방 공책은 게시판으로 대체되고 채팅을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됐다. 사람들은 자기 방에 앉아서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따. 디스켓을 통하지 않고도 공개 자료실에서 바로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 <접속>과 같은 새로운 판타지가 생겼다. 얼굴도 모르는 여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얼굴을 보겠다고 덤볐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나우누리는 패션 시장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우누리의 '패션 게시판'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강남 스트리트 패션의 메카였다. 최신 트랜드는 물론, 유명 매장의 재고 상황까지 공유했다. 패션장터를 통해 수많은 중고 물품이 거래됐다. 이는 단편적인 예다.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 인터넷은 온라인의 영역을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PC통신은 저물고 웹 사이트가 게시판을, 네오위즈의 '세이클럽'이 채팅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전화번호와 함께 '한메일' 혹은 '핫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이 시기에 급부상한 것이 바로 프리챌이다. 프리챌은 1인 미디어의 시대를 열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앨범과 일기장이 등장했도, 커뮤니티마다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기 바빴다. 프리챌은 다음 카페와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를 장악했다. 자신의 공간에만 공을 들이면 그만이었고, 열심히 다른 곳을 열람하면 끝이었다. 이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중심이 이동한, 소통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그 아성이 무너진 것은 프리챌이 유료화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이를 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프리챌을 떠났다. 그들에게 새 보금자리를 제공한 것은 싸이월드였다. 아기자기한 레이아웃과 간편한 인터페이스는 온라인의 '온'자도 모르는 여성들까지 미니홈피에 빠뜨렸다. 싸이월드의 성공은 폭발에 가까웠다. 그 폭발은 지금까지도 전 국민을 '싸이하게' 만들고 있다. 싸이월드의 대중화는 오히려 반대급부적인 디지털 소통의 다양성을 추구하게 했따. 싸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좀 더 자유도가 보장된 블로그를 선택했다. 블로그는 RSS라는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블로그의 게시물을 한 자리에서 구독할 수도 있었다. 디지털 소통을 블로그를 통해 미디어의 형태와 더욱 가까워졌다.

 최근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소통을 이끄는 것은 마이크로블로그라고 부르는 트위터다. 트위터는 이미 미디어를 앞질렀다. 중국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위구르 유혈사태 소식을 가장 빨리 알린 것은 어떤 미디어도 아닌 트위터였다. 미국 유학생이 자신의 트위터에 시위 소식을 기록했고, 반나절이 지난 다음에야 각종 외신을 통해 전파됐다. 이란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서도 트위터는 빛을 발했다. 트위터는 신속한 내부적 결속과 세계로의 소통 도구로 활용됐다. 이용자간의 친목 도모에 그치던 웹 사이트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미디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SK Comms의 한 관계자는 이미 마이크로 블로깅은 싸이월드와 네이크온을 통해 이루어져왔다고 말한다. 미니홈피의 메인 소개 글과 네이트온 대화명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네이트온의 '미니클럽 프리톡' 기능은 한 줄의 글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여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있다. 새로운 인맥을 형성할 필요 없이, 기존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의 인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싸이월드에 힘입어 성공한 네이트온을 보면 그 가능성에 꽤 신뢰가 간다.

 사실 세계적인 관점의 '소통의 변천사'는 앞서 기술한 내용과는 상이할지도 모른다. 트위터의 성공은 아직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약 2년 뒤에는 과연 소통의 패권을 누가 쥐고 있을까? 혹자는 구글 웨이브가 이른 시일 내 트위터, 페이스북을 제치고 소셜네트워킹의 선두자리에 오를 것이라고도 말한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디지털 소통의 프로세스는 점점 더 단순해지고 빨라지고 있고, 이는 곧 인간의 소통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천리안과 트위터의 간극이 바로 그 증거다. 그 속도를 계속 따라가지 못하면 어떤 매개체도 성공할 수 없다.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일 것이다.




 2개월 만에 다시 인터넷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대 인터넷 PC에 문제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덕분에 라우터와 모뎀, 게이트웨이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달 가량 독학으로 네트워크 디바이스와 씨름한 끝에 결국 원위치 시켰어요. ㅡㅡV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으며, 앞으로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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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미디어 그룹들의 자사 컨텐츠의 인터넷 유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부딪히고 있는 첫번째 고민은 애플이나 유튜브, 주스트와 같은 인터넷에 뿌리가 깊은 기존 유통채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다. 디즈니나 CBS처럼 이들을 활용할 경우 메이트는 매우 크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는 이들 서비스가 영상 컨텐츠 유통채널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경우, 영상 컨텐츠 유통과정에서 미디어 기업들의 입지가 크게 약화될 우려가 있다.

 각 미디어 기업들은 먼저 애플의 아이튠스를 영상 컨텐츠 판매채널로 받아들인데 이어 2006년 중반부터는 유튜브에 대해서도 다소 완화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은 NBC Universal이었다. 2006년 6월, NBC가 유튜브와 협력관계를 맺을 방침임을 밝힌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유튜브에 NBC 채널을 설치하고 일부 프로그램의 선전용 클립을 유튜브에 업로드한다는 내용이었다. 불법 컨텐츠의 유통문제로 유튜브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던 회사 중 하나인 NBC로서는 180도의 방향 전환인 셈이었다.

 10월에는 유니버셜뮤직그룹(UMG)과 소니 BMG, 그리고 CBS가 유튜브와의 제휴를 발표했따. 이 제휴로 이들 기업이 소유한 음악이나 비디오 컨텐츠를 유튜브에 게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단 저작권이 보호되는 형태로의 업로드만 가능하며, 위법 컨텐츠가 게재된 경우 이들 기업이 직접 문제의 컨텐츠를 삭제할 수 있도록 했다. 유튜브와의 제휴를 통해 이들이 노리는 것은 자사 컨텐츠에 대한 광고효과, 컨텐츠 판매(VOD) 및 웹에서의 컨텐츠 시청에 따른 광고수익이다.

 그러나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듯했던 유튜브와 대형 미디어 그룹들의 관계는 이후 다시 급랭하는데, 여기에는 구글의 유튜브 인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유튜브 인수로 폭스인터랙티브미디어(Fox interactive Media)와의 계약을 야후나 MS에 빼앗겨 버릴지도 모를 위험에 처했다. 이 일 이후 구글과 뉴스코프는 협상을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계약 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2007년 3월에는 MTV와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등을 소유하고 있는 비아콤(VIacom)이 10억달러의 손해배상 지불을 요구하며 유튜브를 제소했다.

 이처럼 상황이 다시 급변한 이유는 2006년 12월 미국 비즈니스위크지에 게재된 한 기사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기사에서는 유튜브를 매수한 구글이 대형 미디어 기업들에게 라이센스료로 1억달러 이상의 금액을 제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구글은 그 대신 미디어 기업들의 3년간 유튜브를 저작권 침해로 제소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구글의 이러한 행동이 안그래도 구글의 유튜브 인수로 공포감을 느끼고 있던 미디어 기업들을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튜브에는 5분 미만의 동영상만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TV나 영화 전편을 유튜브를 통해 시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조만간 유튜브가 TV 프로그램과 영화 전편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미디어 기업들이 첫번째로 우려하는 것은 물론 자사 영상 컨텐츠의 불법적인 유통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보다 더 미디어 기업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영상 컨텐츠 유통채널로서 유튜브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막강하다는 사실이다. 유튜브가 영상 컨텐츠 분배 인프라로서 부동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면 유튜브에 영상컨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조건과 고나련한 협상 등에서 미디어 기업들의 입지는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음악컨텐츠 유통시장에서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데, 애플 아이튠스에 컨텐츠를 제공하는 음반사들은 가격 정책이나 수익배분 측면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애플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국내에서도 SK텔레콤의 멜론이 음악 분배 플랫폼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멜론의 가격정책이나 수익분배에 대한 음반사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대부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튜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그 막대한 유저 기반을 긍정적으로 화용해보려던 미디어 기업들은 구글의 제안에 밀려드는 불안감을 주체할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구글의 제안을 받아들여 1억달러 이상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그 대신 3년 동안이나 유튜브가 모든 영상 컨텐츠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유튜브의 동영상 분배 인프라로서의 지위는 확고 부동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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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양자역학은 아인슈타인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많은 물리학자들을 불만스런 감정에 빠지게 하고있다. 심지어 이전까지는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던 사실을 양자가설을 사용하여 설명함으로써 양자물리학을 탄생시킨 플랑크 자신도 양자가설을 동원하지 않은 다른 설명을 추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발상을 채택하여 광전효과를 설명함으로써 1922년 노벨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에서 우연이 담당하는 역할을 끝까지 수긍하지 않으려 했다.

 이처럼 양자물리학이 과학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가진 이른바 건전한 상식과 조화시키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요구한다.

 고전 물리학은 우리의 세계가 언제 어디서나 보편 타당한 이론 위에 세워져 있다고 전제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는 반드시 납득할 만한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어떤 결과가 우연과 정보에 의해 나타난다. 관찰자가 관찰을 하기 전까지(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관찰을 하는 순간 우연에 의해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전 물리학은 우리가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보았을 때 우리가 보기 전에도 책이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의 세계에서는 관찰자가 그 책을 보기 전까지 책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다. 관찰자가 그 책을 보는 순간(정보를 얻는 순간) 우연에 의해 그 책이 있는 상태 혹은 없는 상태로 나타난다.

 지금 나는 양자역학이 우리의 건전한 상식과 위배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므로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유명한 물리학자인 리처드파인만은 ‘나는 오늘날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의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양자역학이 우리 세계의 특정 부면을 너무도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양자물리학은 오늘날 많은 첨단 영역들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양자물리학 없이는 레이저를 생각할 수 없으며, 레이저 없이는 반도체가 불가능하다. 반도체가 없으면 현대적인 컴퓨터가 없으며 컴퓨터가 없으면 휴대폰이나 자동차와 같은 오늘날의 거의 모든 현대적인 장비들도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지난 20세기에 이룩한 놀랄만한 과학적 진보의 대부분이 양자역학의 발견에서 기인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정보와 실재를 구분하지 않는다. 정보가 없다면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한 정보를 가질 때 비로소 그 사물은 존재하게 된다. 정보혁명 시대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이유는 정보의 속성이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실재(實在)의 속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인 자산과 자본은 기본적으로 희소자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학은 희소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반면 정보는 풍요자원이다. 정보는 근본적으로 무한하며 쓰면 쓸수록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늘어난다.

 무한한 정보를 공짜로 활용한다는 개념은 오히려 실재에서는 사멸한 마르크스 경제와 닮아있다.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의 폐기를 주장했으나 이것을 대신하는 제도로 ‘생산수단의 공유에 근거한 개인적 소유’를 주장했다. 이것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로부터 이것을 빼앗아 와서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세계에서는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개인은 자본을 공짜로 사용하면서 각자의 역량에 따라 원하는 만큼 물건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인터넷은 네트워크에 대한 책임을 특정인이 지지 않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네트워크에 일종의 공공재(public goods) 혹은 공유자원(common resources)과 같은 특성을 부여했다. 인터넷의 이러한 특성은 또한 인터넷 상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해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로써 정보라는 생산수단을 공유하게 된 인터넷 유저들은 지식이라는 각자의 자산을 가지고 엄청난 양의 부를 창출해 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받아들여야할 정보혁명의 정신은 바로 정보가 무한한 풍요자원임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지금 우리 세계가 정보 역시 희소자원이라는 전제 하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통신회사들은 인터넷의 불안정성을 비판하며 자신들이 네트워크를 컨트롤하던 시대로의 복귀를 꿈꾸고 있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네트워크는 다시 희소자원이 될 것이다. 인터넷이 무선으로, 그리고 방송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가고있는 지금도 방송국과 이동통신회사들은 여전히 주파수가 희소자원이라는 전제 하에 세워진 현재의 사업모델을 고수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음반회사와 미디어 기업들은 쓰면 쓸수록 그 가치가 향상되는 정보의 속성을 무시하고 오히려 저작권 강화에 나서고 있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정보통신 세계의 파워게임, 예를 들어 인터넷 업계와 통신회사, P2P업체와 음반회사, 스카이프와 통신회사, 유튜브와 미디어기업, 통신회사와 방송국, 셋탑박스 메이커와 방송국, 휴대폰메이커와 이동통신회사,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기업과 마이크로소프트간 대립은 정보가 풍요자원인가 희소자원인가를 둘러싼 대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웹2.0은 정보가 풍요자원임을 받아들인 측의 승리를 예감하게 하고 있다. 사실 이 양자간 대결의 귀결점이야말로 웹3.0 시대의 부의 이동방향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지점, 바로 거기서부터 웹3.0의 미래가 펼쳐지게 될 것이다.


- 웹3.0 시대의 파워게임, WEB 3.0, 한지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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