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11 Continued...


고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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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생, 카네기멜론 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포트 대학생들을 모아 큰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는 자신의 형이 만든 학원인데, 학교를 졸업하고 join한 뒤 사업적인 가능성을 발견하고 분야 최고가 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국에 있는 한국 교포들은 한국인들에게 대체로 매우 친절하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를 통해 찾으려 하는 것도 같다.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야죠. 00의 친구는 제 친구이기도 한 걸요.(but any friend of 00 is a friend of mine and I would like to do my best to assist you)’ 마치 한국에서 네 그럼 또 조만간 뵙겠습니다.’라고 말하듯이 겉치레인지 아닌지는 좀 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말 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만약 실리콘밸리로 올 생각이라면 학생비자로 와 있는 동안엔 자신의 회사에서 unpaid로 일하면서 미국을 배우라고 했다. 좋은 생각이다. 또한 자신의 형은 다양한 분야에 투자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기에 나와 동료들의 biography를 보내란다. 투자라도 하려고 하나? ㅋ 여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번 꼭 도전해 보란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기 때문에 해 보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말이라고 한다. 버락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도 결국은 말빨이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거의 대부분이란다. 좋은 tip이다.

 

 미국에서는 Getting a job을 하거나 투자를 받거나 모든 사업적인 기회가 대화에서 온다고 한다. 그리고 바쁜 사람들일수록 판단하는 시간이 매우 짧다. 영하씨는 30초라고 했다. 30초 안에 얼마나 인상적이고 얼마나 reasonable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란다. 물론 책에서도 배운 내용이지만, 여기와보니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 것 같다. 결국은 language. 저녁에 미국 high class들의 dinner party에 갔더니 무슨 말인지 더욱 명확해졌다. 그들은 편안한 듯한 대화 속에서 서로의 수준을 가늠한다. 물론 정서적으로야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난 뛰어난 인상을 줘야한다.


 

Brewster Kahle

 WAIS.com Alexa.com을 팔아치우고 지금은 internet Archive를 설립한 실리콘밸리의 큰 손, 어제의 그 인연으로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다. Palo alto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오니 5시 반, 7시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Joyce 사무실에서 이메일도 확인하고 searching도 좀 하니 시간이 훌쩍, 6시 반이 되어버렸다. 급히 나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이런빈 택시가 없는 거다. 빈 택시 뿐만 아니라 손님을 태운 택시고 띄엄띄엄시간은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Joyce말로는 택시를 타고서도 20분 이상은 가야된다는데속은 타고, 미국에서 얻은 내 첫 기회가 이렇게 날아가나 하는 마음에 분하기도 하고 너무나 화가 났다. 샌프란시스코의 교통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하지는 않았을텐데그런데 7시가 10분도 안남은 시간, 큰 길가에 세워져 있던 빈 택시에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기사가 타더니 시동을 거는 것이었다. 냉큼 무단횡단해서 달려갔더니, 자기는 집에 가는 길이라 태워줄수가 없단다. 난 이판사판 눈에 뵈는게 없으니, 한국에서 자주 쓰던 수법 데로 뒷좌석에 일단 확 타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이니 제발 날 좀 데려다 달라. 이 택시가 아마 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그런날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 사람이 문득 생각난 듯 ‘where r u from?’이라고 묻는 것이었다. 한국이라고 대답했더니, ‘OK’라고 하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알고 보니 택시기사는 터키 사람이었다. 한국은 형제라면서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도 7시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달리고 달리고 다려서 결국 7 5분에 Brewster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미국에서 그런 경험은 매우 독특한 경험이란다. 터키인들의 한국사람에 대한 애정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가보니 단순히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아니라 자신만의 private Home Party였다. 나를 부를지 말지 고민을 한 것 같았다. 다들 거물들만 오셔서..(그 자리엔 Steve wozniak도 있었고, 상원의온도 한분 계셨다.) 그 분들 사이에 어린 동양인 하나가 껴서 그래도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를 하고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한국과 내가 한 일에 관심을 가져 주었고, 난 편안한 분위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 답해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 상류층 들의 Dinner이었는데, (미국이라고 다들 이렇게 식사를 하진 않을 것이다.) 거실에 2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이 있는게 신기했다. 그럼 평소에 4인 가족이 식사를 할 때는 도대체 어디서 먹는거지? 또한 다행스럽게도 일본음식(초밥, 김밥, 회 등)이 나왔는데, chef를 따로 불러서 6~7가지 코스의 요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hostess도 주방을 왔다갔다 하면서 나름 신경쓰는 듯 했으나, Brewster의 친구이자 DTN이라는 회사의 대표가 직접 구해왔다는 싱싱한 참치 한마리가 통째로 얼음에 재워져 나왔을 때는 나도 질려버렸다. 회를 싱싱하게 하기 위해 횟감을 재운 얼음에 항상 음악을 들려줬데나 뭐래나

 톰크루즈 같은 미국의 부자들이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종교나 취미에 빠져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지겨웠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 미국에서는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다 할 수 있으니, 남들이 하지 못하는 괴상한 것들을 하려고 기를 쓴다.

 

 오늘의 주제는 아시아 문화에 대한 경험’으로서 한 명씩 돌아가며 speech를 했는데, 나는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을 다 알아듣기 힘들었다. 내가 듣도보도 못한 단어도 많이 쓰고, 때로는 흥분하면 말이 Rocket처럼 빨라지기도 했다. 그러다 뭔가 말문이 막히는 듯하면 내게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과 이런 자리에서 이런 대화를 대등하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한국의 군대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정말 좋아했다. 미군들이랑 짬짬히 장난치면서 배웠던 단어들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사케가 한순배 돌고나자 나도 좀 익숙해져서 조크도 잠깐잠깐 해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물론 그리 수준 높은 조크는 아니었다. ^^;;) 한 명당 20분 정도씩 이야기를 했는데, speech가 끝나면 꼭 한 마디씩 덧붙이며 거들다 보니 10명 정도가 돌아가는데 거의 5시간이 걸렸다. ㅡㅡ;; 나중엔 좀이 쑤셔서 못 앉아 있겠더라.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야 되는데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굉장히 박학다식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 대해서 음식, 문화, 역사, 심지어는 고3 학생들의 수능문화까지직지심체요절이 몇 년도에 만들어 진 것인가? 그 내용이 무엇인가? 에 대해 말할 때는 나도 그만 말문이 막혔다.

 

 식사가 끝나고 Brewster가 뭔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식탁을 깨끗이 치우라고 했다. 조그마한 나무 상자를 가져왔는데, 상자 안에는 목각으로 된 조그마한 탑이 들어있었다. 탑의 뚜껑을 여니 안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두루마리 종이가 들어 있었는데, 고대 한자가 적혀 있었다. Brewster은 일본에서 구한 것이라면서 직지심체요절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훨씬 전에 인쇄된 활자인쇄본이라면서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아니, 한 나라의 국보급 보물을 미국에 개인이 가지고 있어도 되는거야? 난 그것이 한국의 유산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했다. 물론 내가 있어서 못 보여주었지만, 한국의 보물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시아 문화에 완전히 빠져있는 사람들이라

 

 거의 5시간의 식사와 대화가 끝나고 몇 명이 내게 명함을 주면서 따로 연락을 하라고 했는데, 다들 여기에서는 최고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 했다. 내 첫 레퍼런스가 될 사람들잘 관리해야지Brewster은 자신에게 내 resume를 보내라고 했다. 만약 내가 working 비자를 받는다면 아마 여기서부터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어쨌든 부딪혀 봐야지

 

 식사가 끝나자 긴장이 조금 풀어지며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거실로 나가니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에 절경이란 절경은 다 보였다. 커다란 Private 수영장 너머로 금문교와 Bay bridge, 그리고 Nob hill이 우뚝 서 있었다. 그렇게 보는 것도 부족했는지, 통유리 안 쪽에 천체 망원경 같은게 3개 정도 놓여져 있었다. 여기는 사람 사는 집이야? 관광지야? 언젠가 나도 이런 집을 사야지.. 언젠가 꼭...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게 느껴졌다. 자신과 아내의 이름으로 700억짜리 구호기금을 조성해서 돕고 있다. 멋진데!! 무언가를 이룬 사람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쥐뿔도 없으면서 여유로웠다. 이젠 나도 당당하게 여유롭고 싶다.

 

 매주 목요일날 private 파티를 한단다. 이번에도 그의 아들 logan과 신나게 놀아주었더니 매주 목요일날 와도 좋단다. 파격적인 대우다. 스티브 워즈니악도 그리 자주 초대받진 못할텐데아마 언젠가는 이 모임에서 구글, 야후, 아마존, 이베이, 페이스북의 대표들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배운게 이렇게 먹히는 구나… Logan이 날 정말 좋아한다. 또한 그의 아내 Mary도 나에게 다음에 한국음식을 꼭 만들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이 집은집이 너무 예쁘다. 내가 Brewster과 Wozniak에게 아리랑을 가르쳐준 첫번째 한국인일 것이다. 원래는 logan에게 피아노로 아리랑을 가르쳐주고 있었는데, 모두가 선율이 너무 아름답다며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저택에 상류층 백인들이 부르는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가슴이 찡하다. 노래가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마침 오늘의 주제가 또 Asian 문화라 그랬는지 모두들 거부감없이 잘 따라와주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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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10

10
시에 Caltrain을 타고 Sunnyvail로 이동했다.

SKT America

 처음엔 한 건물을 통째로 다 쓰는 줄 알았는데, 2층 한층만 쓰고 있었다. SKTA가 미주지역의 모든 quater을 통합해 새로운 head로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총 직원 40명 정도로 회사라고 하기도 약간 어정쩡한 조직이었다. 게다가 그 마저도 5~10명씩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니

 한국에서 research했던 SKTA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너무나 달랐다. 한국에서는 SKTA IPE(산업생산성증대)와 일부 고객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건 말 그대로 언론 보도용이자 전략적 홍보였던 것 같고 실제로 SKTA는 여러가지 business incubating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Health care라든지, Bio technology라든지 기존에 SKT가 하지 않았던 신사업을 테스트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각각의 팀은 마치 조그만 독립 회사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추가적인 자금 지원을 받는다거나,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한국의 Head가 결정권을 가지며, 그러한 Top-down의 방식이 엄청난 시간적 손실과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실리콘밸리적인 비슷한 모양새의 회사를 차려놓고는 그 내부는 한국과 똑같이 운영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기 직원들이 SKT를 보고 바보회사라고 할까?

 

Jon Sung

 한국에서 10, 미국에서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베테랑이시다. 연봉은 8억 정도? 만약 한국 SKT에서 20년간은 근속으로 근무했다면 그 정도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만약 SKT에 계속 남아있을 정도의 정치력과 능력이라면 충분히 그 정도 액수의 연봉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의 물가차이를 생각하면...

 미국에 오래 계셔서 그런지 상당히 개방적이셨다. Han이라는 85년생 직원과 함께 일을하고 있었는데, 아들뻘 되는 친구와 스스럼없이 지낸다. 떠듬떠듬 한국어로 서로가 친구처럼 대하니 솔직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점심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12시에 만나서 거의 오후 3시까지 밥먹고, 차 마시고, 실리콘 밸리 구경도 시켜주시고나야 고마웠지만, 평일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근무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 보였다. 날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 주신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과연 정말 나 때문에 그렇게 오후 시간을 비워버린 것 같진 않다. ^^;;

 

 Jon은 직장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내게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국에서 일을하고 싶다면 비자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되는데, 솔직히 지금 나의 상황으론 working 비자나 green card를 받기가 무척 힘들거라고 했다. 물론 한국에 가서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코 쉽지 않은게 분명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사업이든 취업이든 무엇이든 하려면 자신만의 special한 분야가 있어야 되는데 솔직히 나의 back ground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긴 여기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탠포드, 버클리 졸업생들이 넘쳐날텐데맞는 말이기도 하다.(참고로 Jon도 서울대학교 졸업생이다.) 내가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며칠 동안 한 것들을 보면 나도 보통놈은 아닌데, 그래도 난 한국인이기에 안 된단다. 어른들이 왜 돈은 한국에서 벌어야 된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한국에서 벌기 쉽다는 말은,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실제로 훨씬 더 큰 액수의 경제 단위가 적용된다. 다만 한국인으로서 그러기가 쉽지 않기에, 한국에서 돈을 벌라는 것이다. 그래서 Jon이 내게 추천해 준 것은 일단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그 동안 했던 것들을 잘 포장해서 stanford MBA를 오라는 것이었다. 2년 동안 공부도 하고 네트워크도 쌓으면서 직업을 찾아본 뒤 미국에서 취업을 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SKT에는 절대 취업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Top-down적인 기업 문화와 특정분야에 전문성을 잃게 하는 근무 시스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업무 경험이 쌓이고 능력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자신의 역량을 전문 분야에 사용하는 대신, 단지 커져가는 책상 앞에 앉아서 결재만하게 하는 한국 기업의 조직 구조 등이 아무리 뛰어난 인재였다 할지라도 가면 갈수록 발전이 없는 사람으로 만든단다. 하긴 한국에서 50대에 명퇴를 하신 분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싶어도 결재하는거 말고는 할줄 아는게 없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여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50대가 되면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의 퍼포먼스와 결과를 내고 있을 시점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이직도 쉽고 연봉 협상도 쉬운 것이란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게된다 하더라도 내가 맡은 분야는 결코 여기서 뛰어날 수 없을거란 말도 했다. 사업개발, 투자유치, 조직관리, Presentation, Conversation, Meeting 같은 분야는 백인들만의 분야고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자신만의 특수한 분야에서만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 물론 교포들이야 언어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국인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질게 없지만, 자신이나 나 같은 교포 0.5세대 들은 여기서 고위직으로 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신도 아무리 노력해도 임원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말을 들으니까 더 오기가 생긴다. 물론 가끔씩 보면 가히 예술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Presentation이나 Speech를 하는 Native들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라고 못하겠는가? 물론 훨씬 힘들겠지만, 어차피 사업이라는 것도 남들이 에이, 그게 되겠어?’라고 말하는 단 몇 %의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는게 아니겠는가? 그런 도전이 없다면 결국은 남들과 똑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Jon이 나에게 말해준 길은 아주 전형적인 career path를 말해준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고 충분히 고려해야될 말이다. 다만 그 충분한 고려의 결론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저녁에 Joyce에게 Jon이 내게 해주었던 말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Pass~, So Korean style~, 이라고 한다.

 

 

Han C. Choi

 85년생, 스탠포드를 졸업한 수재이자 재미교포 2세다. 한국말이 서투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대화가 될 정도는 된다. 스탠포드에서 KSA Korean Student Association의 회장을 맡아 태극기 휘날리며 감독을 직접 초대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실행력 있는 젊은이다. 엘리트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


 그도 사업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좀 더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려 하기에, SKTA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spare 타임에 자신의 사업을 해 나갈 계획이란다. 내가 한국에서 잠시 했던 생각과 똑같다. 자신이 노트북에 수백개의 아이디어가 있단다. ,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했었던 아이디어 들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Jared가 떠올랐다. Jared도 중학교 때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고, 어찌됐건 도전을 해서 회사를 경영해본 경험이 있다. 솔직히 Han, 이 친구가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도 내 생각엔 그 친구의 아이디어는 몇 년이 지나도 그냥 노트북 속에 아이디어로 남아 있을것 같다. 실제 Entrepreneur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바로 실행력이다. 마치 귀족 대 변방의 오랑캐라고나 할까? 나도 한국에서 오랑캐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아무리 귀족이라 하더라도 왕의 직계혈통이 아닌 한 왕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랑캐는 왕도 되고 황제도 되고 때로는 신도 됐다. Han잘 살 것이다. 나름 품위있고 적당히 높은 소득수준을 유지하면서

 

 실행력, Jon같은 사람들이 내게 어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일단은 한번 부딪혀 볼테다. Han이 아니라 스탠포드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난 주눅들이 않을테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을 내가 고용하겠다.

 

 Han에게 Joyce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했지만 나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서울대학교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도 스탠포드를 간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했으면 했지 못하진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 내일 Han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도 나에겐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좀 더 관찰해 보고 싶다.

 

 Han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만약 내가 모든 자금이나 인력이나 아이디어를 한국에서 끌어올 수 있다면 굳이 미국에서 일할 필요가 없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현지인들 몇 명 고용해서 마케팅이나 사업개발과 같은 일정 분야만 담당케 하고, 나머지 부분은 한국에서 사무실을 만들어 운영을 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나도 굳이 어렵게 green card를 받을 필요 없이 가끔씩 미국에 와서 업무를 봐도 되는 것이다. (여기 실리콘밸리에서는 조직관리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들의 업무에 있어서는 관리자가 없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문화가 매우 성숙해 있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나 사실 전략적으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는 현지인들을 어떤 사람들로 고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특히 전략적인 협업에 있어서 대표가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도 많다. Han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무리 똑똑해도 결코 혼자서는 모든 전략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많은 벤처기업들은 Jared가 말했듯이 실제로 수 많은 Brain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는 분명 예상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입될 것이다. 그건 그만한 역량을 갖춘 나의 cofounder가 아니면 반드시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또한 아무리 인터넷 툴이 잘 발달되어 있다 하더라도, 결코 outsourcing을 해서는 안되는 부분이 마케팅과 사업개발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인 등의 작업은 최근에 협업을 할 수 있는 툴이 많이 개발되고 실제로 그렇게도 많이 하고 있으나, 마케팅과 사업개발은 얼마든지 손쉬운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것 같아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특히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전략을 바꿔주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결코 outsource에서 관리할 수 없는 분야이다. 그리고 회사를 쪼갠다는게 아직은 한국에서 전혀 익숙치 않다. 아무리 툴이 완벽해도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엔 너무나 많은 시간적, 금전적 비용이 든다. 차라리 그 비용이면 미국으로 다 옮겨서 걱정없이 시작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

 

 Han Soompi에 대해 알고 있고 또 가끔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Joyce Soompi에서 봤던 것들이 Han Jon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Joyce가 학벌이 더 좋고 더 똑똑해서 그런걸까? 그렇다면 나도 봤는데, 나도 스탠포드 졸업생보다 더 똑똑한 걸까? ^^  SKTA에서는 숨피를 두고 , 그거 제법 유명한 커뮤니티이긴 한데, 돈은 안되지.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벌어?’라고 생각한단다. 나는 숨피에서 돈을 봤다. 아마 Joyce도 나와 같은걸 봤을 것이다.


SKTA
도 결국은 SKT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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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3월의 마지막 날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Carl train을 타고 san jose로 가는길에 너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졸았는데, 그 조차도 마음놓고 쉬지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졸면서도 나도 모르게 노트를 꺼내 메모를 하곤 한다. 꿈인지 생신지도 모르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 이 시간들이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Sedated…

 Vlab은 MIT/Stanford Venture Laboratory의 줄임말인데, 성공한 벤처 사업가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한 질의 응답 시간과 네트워킹의 시간을 갖는 conference call의 한 종류다. 사실은 FACEBOOK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채 일단 등록부터 했는데 부가벤쳐스에 Jonathan님이 마침 본인도 가신다고 하여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오늘의 Speaker는 젊은 동양인 한명과 또 한명의 white였는데, 둘 다 성공적으로 exit을 한 경험이 있는 칭송받는 사업가였다. (둘 다 20대 중반인데 벌써 사업경험이 10년이 넘는다.)특히 동양인 청년의 Presentation을 들으며, ‘아, 이런 것이 바로 perfect한 PT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적당한 유머와 곳곳에서 터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좌중을 휘어잡는 Speach를 들으며 실리콘밸리의 힘과 벽을 느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사람다 Dropper-out이라는 것이었다. 동양인은 버클리 대학을, white 는놀랍게도 고등학교 중퇴자였다. 그들의 인생 스토리에서부터 설립했던 회사, 그리고 exit의 과정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무척 소중한 기회였다. 한국과는 달리 conference의 대부분이 좌중의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마치 토크쇼처럼 농담에서부터 진솔한 이야기까지 주고받고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극복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몇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적어보자면,

We don’t have degrees but we have life degree which is the most valuable MBA.

We are fast learner, that means we don’t repeat mistakes.

Focus on what u can do best, don’t try to do everything.

Rather study, Start. Purpose of business, 10% for money, 90% for Dream.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마치 한편의 모노로그를 보는 느낌이었다. 충분히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감동도 있는… 그에 비해 한국은 너무 형식적인 것들이 많다.

 Vlab에서 sponsorship chair을 담당하고 계신 분을 만나뵜다. 놀랍게도 한국 교포분이셔서 귀한 시간을 어렵게 가질 수 있었다. 이 분에게서 Vlab의 취지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들으며, 언젠가 Speaker로 발의하겠다는 꿈을 비전보드에 추가 했다.

 이 분을 통해 Bay Area에 계신 서울대학교 alumnus들을 소개 받게 되었다. 내가 그 분들께 연락 드리면 무척 좋아하실거라고 하며, 네트워크의 핵심이라고 하는 분을 소개해 주시겠다고 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보기에 내가 참 용감무모해 보이셨나보다. 굉장히 흥미로워 하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신다. 나를 통해 한국의 nationality를 찾고 싶어 하시는 것도 같으며, 나아가 모국의 어린 후배에 대한 연민의 정 같은 것들을 느끼시는 것 같다.

 세계 최고들이 모인 이 곳에서 한국의 힘을 느끼게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나도 언젠가 반드시 이 분들의 기대에 부응해 당신들께서 이루어오신 역사를 이어나가고 싶다. 웬지 더 이상 Stanford/Berkley alum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잠시나마 한국과 서울대학의 power를 불신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한국은 결코 작지 않다.

웬지 오늘 밤도 룸메이트에게 미안해해야 할 것 같다.

Sorry Nicolas, but you are so sensi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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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Bay Area로 전입온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었다.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감사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는데, 의욕만큼 현실에도 충실하진 못했던 것 같다.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을 준비하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역시 세상일이란게 여유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 외국인으로서 Social Security Number없이 핸드폰을 마련하려니 AT&T나 Verizon에서는 Deposit으로 800불을 지불하라고 한다. 그리고 계약기간 없이 핸드폰을 사면 기기가격만 아이폰을 기준으로 600~700불 정도하니 총 1500불을 내고 구입해야 하는 격이다. 핸드폰 하나 장만하는데 180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된다는게 정말 어이가 없다. 또한 핸드폰이란게 하룻밤 새에도 수없이 새로운 기기들이 생겨나는 애물단지인데, 바꿀때마다 기기가격을 통으로 지불해야 한단 말인가?
어찌됐건 Nexus-one을 질러버렸다. 현재 Bay Area에서도 Closed 형태로 판매가 되고 있는데 Jared의 도움으로 하나 장만해 버렸다. 물론 Beta Version인 만큼 약간 버벅대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 나도 어엿한 IT geek이다.

둘째로, Bank Account를 개설했다. Wells Fargo와 Bank of America가 가장 크다고 하는데, WF에 소개받은 accountant가 계셔서 깔끔하게 처리했다. Checking account와 Personal Check를 만들었는데, 영화에서나 보듯 수표를 들고 다니다가 필요한 곳에서 금액과 signature을 해서 북 찢어 주는게 가능해 졌다.

셋째로, California Driver's license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예상문제를 봤는데, 음.. 이건 뭐 한국이랑 제법 다르기도 하다. 예를들어 수신호라든가(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후진 시 반드시 상체를 뒤로 젖혀야 한다든가, crossroad에서 해야하는 행동 등이 굉장히 생소하기만 했다. 또 실제 시험도 그렇게 tricky한 것들이 주로 나온다고 하니 공부 좀 하긴 해야겠다.
여기 San francisco에서는 차 없이 다니기가 참 불편하다. downtown 쪽은 차가 없어도 걸어다닐만 한데, 진정 silicon Valley라 할 수 있는 Palo Alto부터 San jose까지는 Carl Train이라 하는 기차가 다니긴 하지만 막상 역에 내리면 막막하기만 하다. 워낙 넓은데다 대중교통이 너무 대중없이 다니다 보니 약속 시간에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Palo alto에서 몇번의 미팅을 가졌는데, 차 없이 가려다가 정말 큰 봉변 당할 뻔 했다. 구글 맵으로 아무리 찍어봐도 이건 뭐 스트리트 뷰랑 실물이랑 다른건 어쩌자는 건지... 택시도 안다니고, Call texi를 불러도 오는데 최소 30분...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DL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DL취득에 있어서는 외국인이라 딱히 차별을 두는 건 없다고 하니 가능한한 빨리 따야지... 또한 DL은 여권대신 신분증으로도 인증이 되니 여차저차해서 상당히 유용한 물건이라 하겠다.


Palo alto cafe의 오후...
정말 스티브 잡스 처럼 생긴 분이 저쪽 구석에 앉아 있다.
정말 마크 주크버그 처럼 생긴 친구도 요 옆에 앉아 있다.
정말 세르게이 브린처럼 생긴 사람은 바로 내 앞에서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지금은 오후 3시,
어림잡아 지금 바로 이 시간에 여기 palo alto 근교에만 제 2의 애플을, 구글을 페이스북을 꿈꾸는 사람들이 3~4만명 정도가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간다.
그렇게 실리콘밸리는 꿈틀댄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식당에서든 카페에서든 심지어 화장실에서조차 그들은 아이템과 기술과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회사를 통해 PT를 들어보면 정말 이 사람은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이로운 괴짜들도 많은 곳이 바로 여기 실리콘밸리다.

독해지는 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치열하다. 그리고 또 다르다.
나의 배경이 군장과 모래주머니가 될지, 스팀팩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한번 부딪혀 보련다.



한국에서는 올해 27살이라고 이제는 20대 후반이라 생각했다.
여기오니까 나이가 25살이 된다.
2년 간의 경험과 성숙을 가지고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또한 비행기타고 오면서 하루가 더 늘었다.
새로이 주어진 2년은 다시 시작될 나의 미래와 각오를 위해서,
그리고 또다시 하루는 마음의 여유를 위해 쓰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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